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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왕후가 아닌 킹메이커였던 원경왕후. 그녀의 당찬 지도자로서의 모습과 열등감과 책임전가, 비겁함의 끝판왕인 이방원을 보면서 여직껏 이방원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저처럼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거 같아 원경의 시대배경 및 인물이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평가되어 있는지 찾아본 것을 남깁니다^^ 물론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니 저희가 진실을 알 수는 없겠지만요~ >.<
1. 이방원(1367년~1422년)
- 조선의 3대 국왕 태종.
- 조선 태조 이성계와 정부인 신의왕후 한 씨의 5번째 아들로 태어나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
- 1차 왕자의 난(1398년): 원경왕후의 친정인 민 씨 일파는 이방원에게 반정을 독려하고 이방원은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을 비롯해 익안대군 방의와 회안대군 방간 등 여러 왕자들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신덕왕후 소생의 이복동생인 무안대군 방번과 세자 방석을 죽이고 방석을 지지하는 정도전과 남은, 심효생을 비롯한 일파를 모조리 주살한 후 정권 장악 ▶권력에 대한 회의를 느낀 태조는 둘째 아들 영안군 방과(정종)에게 보위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남
- 2차 왕자의 난(1400년): 태조의넷째 아들 회안대군 방간이 난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회안대군은 유배 보낸 후 정종으로부터 양위받아 왕위에 오름 ▶왕권 중심의 조선을 만들기 위한 방원의 조치였으나 이성계는 죽을 때까지 방원을 용서하지 않음
- 왕권의 안정과 강화를 위해 자신을 등극하게 만들어준 공신들을 유배 보내거나 처형, 사병 혁파
- 원경왕후의 아버지이자 본인의 장인인 민제는 개국공신이고, 네 명의 처남 민무구, 무질, 무휼, 무회는 모두 원경과 함께 이방원을 왕위에 올린 공신 -> 이들이 세자인 양녕대군을 지지하고 사람들이 이들 주위로 몰리자 제거 ▶ 장인 민제는 병사, 민무구와 민무질은 유배했다가 사사, 민무휼과 민무회 사형
- 호패법과 6조 직계제를 실시, 신문고 설치
- 후궁정치: 중전의 기를 누르고 버릇을 고치기 위해 재위 18년간 후궁 19명을 둠
- 원경황후와 상의 후 저유분방한 양녕대군을 폐세자 하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세종 이도)을 세자로 삼음
- 1418년 옥새를 충녕에게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남, 1422년 56세의 나이로 승
▶이러한 태종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 당대와 다음인 세종 때에는 조선이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군사적 발전을 이루게 됨
2. 원경왕후(1365~1420년)
-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권문세족 중 하나인 여흥 민 씨 가문에서 아버지 민제와 삼한국대부인 여산 송 씨의 4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
- 1382년, 18세의 나이로 두 살 연하인 이방원과 결혼
- 이방원과의 사이에 12명의 자식을 둠 (이방원이 정안군 시절에 경안공주와 요절한 3명의 대군들,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을 낳음) ▶아버지와 4명의 남동생이 이방원에 의해서 제거 및 죽임을 당한 후에도 태종과의 사이에 자식을 낳음
- 이방원이 왕이 되는데 막대한 역할을 하였으나 외척 숙청 과정에서 아우들이 모두 사사되면서 친정은 멸문의 화를 입음
- 후궁을 들이는 문제, 원경왕후의 친정문제, 양녕대군의 폐위 문제로 태종과 갈등
- 조선왕조에서 문정왕후, 명성왕후와 더불어 가장 정치력이 강한 왕비로 평가받음
3. 채령
- 기록 없음, 드라마의 재미를 위하여 추가된 가상의 인물(원경 왕후가 친정에서 데려온 방방나인 출신의 후궁)로 추측됨
4. 효빈 김 씨(미상~1454년) - '원경'에서의 효순옹주(영실)
- 민 씨의 가비, 생전에 빈은커녕 옹주나 궁중 등의 품계를 받은 기록이 전혀 없음
-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기록에는 '효순궁주'를 찾아볼 수 없으며 그저 '경녕군 이비의 생모 김 씨'로 나타나 있음 / 태종이 즉위하기 전부터 그와 부인인 원경왕후를 모시는 여종 출신/태종이 즉위하기 전 송도에 살 때 집에 흰 용이 나타난 걸 보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림/태종 이방원은 김 씨가 경녕군을 임신한 지 3개월 후에 궁을 나가는데, 이후 원경왕후가 궁 밖에 있는 김 씨를 학대하였다 주장하며 처남인 민무휼과 민무회에게 자진을 명함
- 야사의 기록: 이방원의 양어머니 신덕왕후 강 씨의 친정에서 부리던 여종, 강 씨가 입궁하면서 궁녀가 됨. 태종 이방원이 김 씨를 해라여 했던 책임을 원경왕후보다는 민 씨 형제에게 전가헀는데, 원경왕후가 했다고 하면 폐비 논란이 불거지고 세자인 양녕대군의 입지가 위험해지기 때문
5. 경녕군 이비(1395년~1458년)
- 태종의 서장자로 어머니는 효빈 김 씨
- 중대한 사건을 주도했다거나 하는 등 큼직한 활약을 한 적은 없어서 비중 없음
6. 양녕대군(1394년~1462년), 효령대군(1396년~1486년), 충녕대군(1397년~1450년)
- 모두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사이에 태어난 대군들로, 이방원이 즉위하기 전 정안군 시절에 태어남
- 양녕대군: 치밀하고 엄격한 성격의 태종과는 달 호방하면서도 풍류를 즐기는 스타일로, 1418년 폐세자 됨(가장 큰 사건은 전직관리 곽선의 첩인 어리와 간통하여 아기를 가진 것)
- 효령대군: 가장 장수한 조선의 왕자. 글 읽기를 좋아하고 명필이었으며, 활쏘기가 능숙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왕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음. 태종의 의중을 헤아려 아우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에 세종대왕이 '나의 형이 곧 청권(靑權)'이라고 칭송함
- 충녕대군 이도: 조선의 4대왕 세종대왕. 사서삼경에 정통하고 독서를 굉장히 많이 했으며 악기 및 그림 등 다방면에 능통, 성격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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