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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2024년 12월 3일의 계엄령으로 다시 회자되는 정치 영화ㅜ

by 단지only 2024.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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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겨울, <서울의 봄>을 같이 보고 나온 딸이 진정이 안된다며 술 한잔을 사달라 했습니다. 70년대생인 우리에게는 생소하지 않은 스토리인데도 눈으로 그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보고 나니 그 절망감을 감출 수가 없는데, 글로나 영화로나 이를 처음 접한 2000년 대생들에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어차피 1212 사태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아니까 영화에서라도 속 시원하게 청와대 폭격이 성공하여 반란자들이 죽은 걸로 끝냈으면 안 되는 거였냐는 젊은 친구들의 한탄을 들으며, 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화가 지금의 안일한 사회에 던져준 문제의식에 감사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저께 대한민국을 밤새 깨어있게 만든 '12.3 계염령'사태를 주시하며, 다시 이 영화를 찾아서 보고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권력의 공백과 반란 모의

1979년 10월 26일 밤, 18년간 권력을 독점해 온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됩니다. 국무위원과 정부 고위 관계자, 주요 군간부들이 모두 육군본부로 소집되고, 육군본부 교육참모부 차장인 이태신(정우성) 소장 또한  육군본부에 도착합니다. 잠시 후, 최한규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전한 후 비상국무회의를 개최합니다. 이에 27일 새벽 4시, 대한민국 전국에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사령관으로 정상호(이성민)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됩니다. 시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전두광(황정민) 소장은 대통령 시해범으로 체포된 김동규 중앙정보부장에서 고문을 가하며 그럼에도 세상은 그대로라며 빈정거립니다. 

전두광은 각 정부부처 차관들을 보안사령관실로 불러 정보를 보고 하게 하고,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나온 9억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고, 군 인사권에 영향력을 끼치려합니다. 정상호 참모총장은 정치를 하지 말고 군인의 임무에 충실하라고 전두광에서 충고하나 이미 권력의 맛을 본 전두광은 충고를 무시라고, 이에 정상호 총장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전두광과 그가 속한 하나회를 뿌리 뽑으려 합니다. 자신들을 배척하려 하는 모습에 화가 나 회의장소를 떠나던 전두광과 하나회 회원들은 복도에서 이태신 소장과 마주치고 그를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하지만 정상호와 마찬가지로 자부심을 가진 강직한 군인인 이태신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정상호 총장은 하나회를 숙청하기 위해 오국상 국방부장관에게 그 구성원들을 뿔뿔이 지방으로 발령할 것을 건의합니다. 하지만 전두광에게 뇌물을 받은 오국상은 이 인사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각 조직마다 침투해 있는 하나회 회원들을 통해 이 소식이 전두광의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방으로 좌천될 수 없었던 전두광은 하나회 회원이자 자신의 육사 친구인 노태건을 불러 계엄사령관을 끌어내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대통령 시해 당시 군정동 안가에 시해범인 중앙정보부장과 정성호 총장이 함께 있었는 걸 빌미로 그를 체포하자는 거였습니다. 연희동 자택에 하나회 선후배들을 불러 만찬을 벌리며 전두광은 계엄사령관 체포 계획을 밝히고, 반대하는 선배들에게 대통령의 재가만 받으면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며 성공 후 그들 모두에게 한 자리씩을 줄 것을 약속하며 회유합니다. 이에 뜻을 함께 하기로 한 하나회 회원들은 거사 날짜를 세 내각이 들어서기 전인 12월 12일로 정하고 작전명은 '생일잔치'로 정합니다.

한편 정상호 총장 또한 대통령 시해사건 당시 본인이 궁정동 안가에 있었던 연유로 시해사건을 조사중인 전두광을 전적으로 밀어낼 수가 없었기에, 그를 견제할 수 있도록 육사가 아닌 갑종장교 출신의 우직한 이태신 소장에게 수도경비사령관 부임을 제안합니다. 평소 이태신 소장은 보안사령부의 과도한 권한을 없애고 오직 군사 안보 지원 임무만 하게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취임과 동시에 하나회 현황을 파악해 보니 수경사 직할 부대 중 30경비단, 33경비단, 헌병단은 하나회 소속이고, 야전 포병단과 방공포병단만이 수도경비사령관의 지휘로 움직일 수 있는 부대였습니다. 

2. 시작된 반란

거사 당일 전두광은 동해로 발령받아 가기 전 마지막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며 수도권 방위를 책임지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소장과 육국 특수전사령관 공수혁 소장, 육군 헌병감 김준엽 준장을 한 자리로 초대하여 잡아둡니다. 경복궁에 주둔한 제30경비단에 하나회 일당들은 총리공관으로 몰려가 참모총장을 즉시 구속해서 수사해야 한다며 최한규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원칙주의자였던 최한규는 국무회의를 거쳐 임명된 계엄사령관을 함부로 수사할 수 없으니 내일 아침에 국방장관과 함께 정식으로 절차를 거쳐 처리하자며 재가를 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윤우명 대령을 위시한 보안사 요원들은 총장 공관으로 가서 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나와 조사가 필요하다며 정상호 총장을 체포하려고 합니다. 대통령 재가를 받았냐는 정상호 사령관의 물음에 그렇다고 거짓으로 대답하고는 무력으로 끌고 나옵니다. 현관에 도착한 순간 공관 경비를 담당하는 해병대 병력들이 도착하고 해병대와 헌병단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나 정상호 사령관은 끝내 강제로 차로 태워져 납치됩니다. 또한 옆 공관에 있던 국방부 오국상 장관은 총격전에 놀라 가족들과 급히 한미연합사로 도망을 가지만, 주한 미 대사는 한국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도움을 줄 수 없다며 육군본부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전두광의 계략으로 한자리에 잡혀있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소장과 육국 특수전사령관 공수혁 소장, 육국 헌병감 김준엽 준장은 참모총장 관사에서 총격이 벌어져 정상호 총장이 납치되었다는 강동찬 대령의 보고를 듣고 각자 본인들의 부대로 서둘러 복귀합니다. 수경사령부로 갔던 이태신 소장은 총격 현장에 있었던 권형진 준위로부터 이 모든 일이 보안사의 소행임을 듣고 육군 현병감의 김준엽 준장에서 이 정보를 알립니다. 국무총리 공관 앞에서 전두광이 있다는 걸 안 김준장은 그를 체포하려 하나 육군참모차장 민성배 중장이 만류하는 틈에 전두광 일행은 채 열리지 않은 정문으로 들이박아 탈출하여 30경비단으로 복귀합니다. 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이 있었고, 진압군에서 전군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으며, 총장을 구속하라는 대통령의 재가는 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반란군 측 장성들은 실패를 우려하여 그만 멈추자고 주장합니다. 이때 전두광은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며 반란군들 앞에서 성공을 자신합니다. 

3. 반란군과 진압군

반란군이 국방부 장관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던 중 30경비단으로 이태신 소장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이태신 소장은 '첫째 총장님을 육본으로 모실 것, 둘째 30경비단에 있는 반란 세력을 즉시 원대 복귀할 것, 셋째 직속 부하인 장민기 대령, 원경 대령, 진영도 대령을 지금 즉시 수경사령부로 복귀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반란군들이 오히려 자신을 반란군으로 회유하려 들자 이태신 소장은 당장 탱크로 밀고 들어가 다 죽여버리겠다며 반란 진압의 의지를 보입니다. 반단군은 30경비단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제9보병단 노태건 소장과 제2공수특전여단 도희철 준장에게 출동을 지시합니다. 또한 반란군 장성 일부는 최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재가를 압박하러 국무총리 공관으로 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무총리는 국방장관과과 함께 정식으로 절차를 거치기 전에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이태신 소장이 특전사령부의 공수혁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8공수특전단의 출동을 부탁하던 중 반란군에 동조한 2공수여단이 서울로 출동했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이에 이태신 소장은 3군사령부로 연락하여 26사단과 구도기계화보병사단의 출동을 부탁하고, 수경사 관할의 모든 한강 다리들을 정면 봉쇄하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이에 2공수특전여단 는 행주대로로 우회하고, 이태신 소장은 관할 부대장인 30사단장 모상돈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행주대교도 봉쇄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군대의 통신망을 감청 중이었던 반란군은 30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하고 이태신 소장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2공수특전여단이 행주대교를 건너가는 걸 묵인합니다. 이에 이태신 소장은 모든 군에서 듣는 통신망을 통해 반란군에 동조할 경우 즉각 사살하겠다고 선언라고 행주대교 한가운데에서 2공수특전여단을 홀로 막아섭니다. 육군본부는 2공수단에 즉시 철수할 경우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서울로 진입하는 순간 반란으로 간주하겠다고 회유하고 이에 2특전단은 진군을 멈추고 물러갑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하나회는 일제히 육군본부와 수경사, 특전사 등 모든 조직의 하나회 회원들을 통하여 소속 조직들이 반란에 참여하도록 적극적으로 회유합니다. 

한편 이태신 소장은 하나회 소속이 아닌 8공수여단의 박기홍 준장에게 연락을 하는데 처음에는 진압이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지원을 거절하던 박 준장도 이태신 소장의 간곡함에 8공수여단의 출격을 결정합니다. 위기를 느낀 전두광은 육국본부 민 중장에게 전화를 걸어 8공수여단과 2공수여단이 동시에 회군한 후 신사협정을 맺자고 제안합니다. 민 중장의 명령으로 8공수여단은 회군하지만, 2공수여단은 도강으로 행주대교를 건넌 후 서울로 무혈입성합니다. 이때 오국상 국방장관이 육군본부의 벙커에 도착하고, 김준엽 소장은 즉각 전두광 체포를 명령해 달라고 하나 민 중장과 오 장관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2공수여단이 육군본부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에 육군본부 수뇌부들은 육군본부를 버리고 이태신이 있는 수도경비사령부로 피신을 합니다. 수도경비사령부의 강동찬 대령의 발언가 같이 이는 후에 문제가 생길 경우 모든 책임을 이태신 소장에서 미루고자 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반란군으로부터 끝까지 육군본부를 지키고자 홀로 앉아 있는 김준엽 준장의 모습이 결연하면서도 쓸쓸합니다. 

이제 진압군은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소장과 공수혁 소장뿐입니다. 반란군이 공수혁 소장을 체포하기 위해 몰려오자 공 소장은 휘하의 부하들에게 건물 밖으로 나가 항복하고 살아남을 것을 명령합니다. 명령을 듣지 않고 공 소장 곁에 남아 엄호하던 오진호 대령은 김창세 준장이 이끄는 4공수여단의 무차별 사격에 전사하고, 공 소장은 자신이 아꼈는데 전두광의 똘마니 짓을 하고 있냐며 김 준장에게 호통치며 끌려나갑니다. 2공수여단은 비어있는 육군본부와 국방부에 침투하여 끝까지 남아 있던 김준엽 준장을 체포하고, 오 국방장관의 신병을 확보합니다. 

이제 진압군은 오로지 수도경비사령부 뿐입니다. 하지만 이마저 대부분의 전투 병력이 하나회 소속이어서 30,33 경비단과 헌병단에 가 있기에 104명의 장병뿐이었습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기에 휘하의 강동찬 대령은 휘하의 부하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며 권총까지 겨누며 이태신 소장을 막아서나, 이태신 소장은 자발적으로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반란군 무리를 제압하기를 원하는 부하들만을  원하는 부하들만을 데리고 청와대로 향합니다. 

4. 처참한 결말

30경비단 방어선 앞으로 간 이태신 소장은 반란 주동자들에게 즉각 투항하라 소리치며, 30경비단 병력들에게 자의가 아닌 군명에 의해 억지로 끌려 나온 걸 알고 있으니 무장을 해제하라 설득합니다. 9사단의 도착만을 기다리고 있는 반란군에게 이태신 소장은 수도경비사령부의 야전포병단이 30경비단을 조준하고 있으니 5분 안에 추항하지 않으면 정밀타격하겠다 최후통첩을 합니다. 이에 반란군 모두는 당황하고 전두관은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이태신 소장 앞에 나와 지금 포탄을 쏘면 반란군은 진압되겠지만 그 틈을 타서 북한에서 쳐들어올 것이라 협박합니다. 야포사격까지 15초를 남긴 상황, 반란군에게 끌려온 오 국방장관은 반란군의 마이크로 야포단에 사격중지 및 전 대원 복귀를 명령합니다. 이태신 소장은 이런 오 국방장관에게 반란군을 체포하라 전군에 명령해 줄 것을 요청하나 오 국방장관은 오히려 이태신 소장을 직위해제 시킵니다. 이에 이태신 소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능한 사령관'인 자신을 따라준 부하들에게 고마움을 표한 후 원대복귀 명령을 내리고, 자신의 손으로 반역자 전두광을 죽이겠다며 홀로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두광에게 향합니다. 삼중 철조망 너머의 전두광에게 끝내 닿지 못하고 체포되며 이태신 소장은 전두관을 향해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라 외치고, 1212사태는 반란군은 승리로 끝이 납니다. 축하파티를 벌이는 반란군들과 화장실에서 일그러진 얼굴로 폭소를 터트리는 전두광의 얼굴은 악마의 그것처럼 보입니다. 

체포된 이태신 소장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구금되고 옆 방에 정상호 총장이 있는 걸 알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거사 다음날, 끝내 오 국방장관을 앞세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낸 하나회 무리들이 보안사에서 다시한번 거하게 파티를 열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위로 고문으로 망신창이가 된 이태신 소장과 김준엽 중장, 정상호 총장과 총상으로 병원에 있는 있는 공수혁 소장의 모습이 겹칩니다. 

1979년 12월 14일, 전두광과 반란군들은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반란에 참여했던 이들 한명한명이 클로즈업되며 어떤 중요직위에 올랐는지를 보여줍니다. '신군부로 불린 이들은 군조직을 장악 후 정권 탈취를 노렸다. 80년 봄,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를 공권력으로 짓밟았고 5·18 민주화 운동으로 확산되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진압했다. 마침내 신군부는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삼켰다. 찬란했던 서울의 봄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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