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각본을 하였고, 양반을 넘어 세자의 역할이 어울릴 것만 같은 강동원이 노비 역할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전,란>은 개봉 이전부터 화제성을 몰고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민감한 주제여서인지 일본과 중국에서는 상대적으로 평점이 저조함에도 불구하고, 2024년 10월 14일 기준 넷플릭스 영화 글로벌 인기순위는 2위를 기록하였습니다. (한국 내 평점은 8.3/10)
1. 줄거리
조선 태조 때부터 최고의 무신 집안으로 이름을 날렸던 병조참판에게는 큰 걱정이 있는데 무술에 허점이 많은 아들 종려(박정민)입니다. 종려가 무술 사범과의 대련에서 잘못을 할 때마다 또래의 몸종들이 병조참판의 매질에 죽어나가고, 양인이었으나 부합리한 이유로 천민이 된 천영(강동원)이 다음 매질을 당할 몸종으로 병조참판의 집에 끌려갑니다. 본인이 맞지 않는 방법은 상전인 종려의 무술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무술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던 천영은 밤마다 종려에게 무술 훈련을 시키게 됩니다. 번번이 무과 시험에서 낙방을 하는 종려를 대신하여 무과시험에 응시한 천영은 장원급제를 하게 되나, 병조참판은 그 대가로 약속했던 면천(천민을 면하여 평민이 되게 해 줌)을 해 주지 않습니다.
그 직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종려가 금군대장으로 선조(차승원)를 따라 피신을 간 사이, 병조참판네 노비들은 그 간의 부당함에 반발하여 병조참판의 가족을 죽인 후 자택, 노비문서를 함께 불 지르게 됩니다. 약속했던 면천을 해 주지 않아 도망을 가다 잡혀 광에 갇혀있던 천영이 정신을 차리고 광 밖으로 나갔을 때는 이미 집이 활활 타고 있을 때였고, 천영은 살아남은 도련님의 아내와 아기를 구하려 하지만 그를 믿지 않은 종려의 아내는 아이를 안은 채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집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천영은 장원급제 시 하사 받은 청천익(푸른 도포)을 입고 어사검을 가지고 떠납니다. 한편 도성의 백성들도 혼자만 도망 간 왕과 벼슬아치들에게 분노하여 경복궁에 불을 지르고, 피난 가며 그 광경을 보게 된 왕 선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살고자 나루터에서 왕의 배를 빼고자 하는 백성들과 왕의 행렬 사이에 싸움이 난 같은 시각에 도성에서는 천영에게 무술 훈련을 받은 백성들은 의병이 되어 왜군에 맞서 싸웁니다. 그 와중에 왜군의 장수 겐신(정성일)과 일대일로 검을 겨룬 천영은 적 장수의 뺨에 상처를 내고 그의 투구 뿔 한쪽을 자른 채 어사검을 지키기 위해 강으로 뛰어듭니다. 이후 겐신은 천영을 청의검신이라 부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임진왜란은 끝이 나고 왕은 불타버린 궁에 돌아와서도 백성을 돌보기보다는 왕실의 권위를 위해 경복궁 재건에 더 힘을 씁니다. 또한 김자령 장군을 중심으로 천영에게 무술훈련을 받아 왜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의병들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벼슬이나 면천 등의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조선인으로 변장하여 도망을 가던 왜군들을 추적하여 생포한 후 도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물에서는 순신, 땅에서는 자령'이라며 백성들이 칭송한다는 얘기를 들은 선조는 김자령 장군을 못마땅해하고, 본인의 가족을 천영이 죽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던 종려가 김자령의 부대에 천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도성에 온 김자령 장군은 왕의 시기와 종려의 복수심에 의해 역도가 되어 죽임을 당하고, 관군에 의해 포위된 의병들도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 와중에 목숨을 건진 천영은 김자령 군대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 하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종려를 찾아가지만, 이미 천영을 오해하고 있던 종려는 천영을 죽이려 합니다. 천영 또한 이번 만남으로 믿었던 종려 또한 왕이나 그 아비인 병조참판과 같은 사람임을 깨닫고, 그리 원한다면 진정 역도가 되어 주겠다는 선언합니다. 그를 잡기 위해 종려는 선조에게 왜란 중에 감춰둔 보물의 위치를 김자령 부대가 생포해 왔던 왜군의 장수가 알고 있다며 김자령 장군의 잔당들을 초벌한다는 명목하에 사면시켜주어야 한다 청하였고, 그 보물들이 있으면 경복궁을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에 선조는 이를 허락합니다. 보물을 찾고 김종려 장군의 잔당들을 죽인 종려는 겐신의 무리도 모두 조총으로 총살하려 하였으나, 겐신이 이를 예상하고 조종의 발사방향을 거꾸로 해 놓은 탓에 오히려 종려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종려의 칼놀림을 보던 겐신은 청의검신과 궤적이 같다며 청의검신이 종려의 칼을 훔친 것인지 물었고, 종려는 자신이 준 것이라 대답합니다. 그때 나타난 청의검신 천영. 종려와 겐신, 천영은 서로가 서로를 향한 분노로 칼을 겨누고, 천영은 마지막에서야 자신은 종려의 부인과 아들을 지키려 했다는 걸 알리고 종려 대신에 겐신의 칼을 막습니다. 또한 그러한 겐신을 종려가 막아서다 치명상을 입게 되고, 겐신과 천영의 마지막 결투에서 천영은 센긴의 양팔을 자른 채 겐신의 칼로 목을 꿰어 죽입니다. 피 흘리며 죽어가던 종려는 자신을 끌어안은 천영에게 자신이 아직 천영의 동무인지를 물었고,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는 천영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남기고 죽습니다.
파견한 종려의 행방이 묘연한 중, 경복궁에 배달된 보물궤짝들에 흥분하여 뛰어나간 선조는 왜군이 찾던 보물이 자신들이 죽인 조선인들의 코를 보관해 놓은 것이였다는 걸 알게 되고 경악합니다.
그 난리 중에 살아남은 천영과 그의 동지들은 '두루 온 세상 사람이 하나다'라는 뜻의 범동을 조직할 것을 시사하며 호쾌한 웃음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2. <전,란>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
1) 조선의 14대 왕인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백성들을 살피지 않고 여차하면 명으로 넘어갈 생각으로 의주까지 피난을 갑니다.
2) 임진왜란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전국에서 궐기하여 왜군들과 맞서 싸운 의병들의 공이 크지만 종전 후 그들은 외면당하였고, 피난길에서 선조의 비위를 맞춘 내관들이 공신이 되었다 합니다.
3) 임진왜란 초기에 왜군들은 실제로 죽인 조선인들의 귀를 베어갔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공을 부풀리기 위해 귀 2개를 가져오는 대신 코를 베어 오라 하여 코를 모아갔다고 합니다. 이때 가져간 귀와 코를 묻은 귀(코) 무덤은 일본 교토시 도요쿠니 신사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4) 김자령 장군의 실제인물은 임진왜란의 영웅이라 불리는 의병장 김덕령입니다. 전쟁 중에 지친 백성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지만, 전후에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였다가 후대인 효종 때 억울함을 인정 받았고 정조 때에 시호를 받게 됩니다.
3. <전,란>을 보며 느껴지는 시공간을 초월한 공통점
다 타 버린 궁궐에서 징을 치며 춤을 추고 재물을 가지고 나서 나누는 백성들의 모습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나타난 프랑스 혁명이나 <닥터 지바고>에 나타난 러시아 혁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왕의 적은 궁궐과 함께 불타 없어졌냐는 김자령 장군의 울부짖음에 '그 보라고, 저 역도마저 궁궐을 재건해야 한다 하지 않냐'며 자기 원하는 대로 듣는 왕은 대책이 없는 거 같습니다. 백성을 아끼지 않고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며 자신들의 욕심만을 채우는 위정자들의 결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